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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오래 찍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중형카메라를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핫셀블라드(Hasselblad)가 그랬다. 처음 핫셀블라드를 본 것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작품 사진이나 광고 작업 때문에 스튜디오를 찾을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프로 사진가들이 사용하던 핫셀블라드를 보았다. 당시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500시리즈였다.
항공 사진에서 시작된 핫셀블라드
▲ 아이폰15촬영 웨이스파인더롤 바라본 시장의 풍경
ⓒ 이재필
그런데 정작 기억에 남은 것은 카메라의 이름도, 가격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자세였다.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를 펼친 사진가는 카메라를 가슴께에 두고 고개를 숙였다. 작은 사각형의 스크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셔터를 눌렀다.
철컥. 커다란 미러가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묵직한 소리까지 듣고 나면 괜히 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학생이었던 내가 핫셀블라드를 갖는 것은 꽤 먼 이야기였다. 가격을 물어보는 것조차 망설여질 만큼 비싼 카메라였다. 그렇게 핫셀블라드는 오랫동안 가질수 있는 카메라보다 위시리스트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에 가까웠다.
핫셀블라드의 역사는 항공 사진에서 시작한다. 스웨덴의 빅터 핫셀블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 공군을 위한 항공 카메라 제작에 참여했고, 이때 축적된 기술은 전쟁 이후 민수용(일반 소비자) 카메라 개발로 이어졌다. 1957년 등장한 500C는 이후 오랫동안 이어지는 핫셀블라드 V 시스템의 중요한 출발。이 됐다.
렌즈와 파인더, 필름매거진을 필요에 따라 교환할 수 있는 모듈 구조와 6×6cm 정사각형 포맷. 지금 우리가 '핫셀블라드'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모습도 이 시기에 완성됐다. 그리고 이 카메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나사(NASA)다.
1962년 우주비행사 월터 시라가 머큐리 8호에 핫셀블라드 500C를 가져가면서 인연이 시작됐고, 이후 나사의 우주 프로그램을 위한 여러 개조 모델이 만들어졌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서도 핫셀블라드 카메라가 사용됐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핫셀블라드라는 이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후손을 들고 다니면서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운 일이다.
딱 열두 장, 그래서 더 신중하게
▲ hasselblad 503촬영 실내 흑백 인물 - 핫셀블라드 503과 80mm 렌즈. 6×6의 정사각형은 사람과 그 사람이 머물던 공간을 함께 담기에 좋았다.
ⓒ 이재필
이번에 사용한 것은 핫셀블라드 503 계열 바디와 Carl Zeiss Planar 80mm 렌즈다. 80mm는 6×6 포맷에서 표준렌즈 역할을 한다. 광각처럼 많은 것을 보여주지도 않고 망원처럼 무엇인가를 가까이 끌어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바라본 거리와 감각을 비교적 담담하게 옮겨놓는다.
120필름을 A12 매거진에 넣으면 한 롤에서 얻을 수 있는 사진은 열두 장이다. 열두 장. 디지털카메라에 익숙해진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하지만 핫셀블라드에서는 그 열두 장 때문에 오히려 사진을 찍는 시간이 길어진다.
파인더를 펼치고 고개를 숙인다. 좌우가 뒤집힌 화면을 바라보며 구도를 잡고 초。을 맞춘다. 노출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화면의 가장자리를 살핀다. 그리고 정말 이 장면을 찍을 것인지 생각한다. 그 과정을 모두 지나야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 철컥.
핫셀블라드의 셔터음은 꽤 크다. 6×6 화면을 보여주던 커다란 미러가 움직이면서 손끝에도 작은 충격이 전해진다. 조용하고 우아한 외형과 달리 사진 한 장을 찍는 순간만큼은 꽤 기계적이다. 그래서 한 장을 찍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남는다.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풍경
그렇게 핫셀블라드와 여름 드라이브를 나섰다. 특별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차를 몰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잠시 멈췄다. 여름의 산은 짙은 녹색이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적운이 떠 있었다. 핫셀블라드의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를 열었다.
▲ hasselblad 503촬영 산과 구름, 빛이 번진 풍경 - 해가 기울기 전의 산과 여름 구름. 필름 한쪽으로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 이재필
고개를 숙이는 순간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풍경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6×6의 정사각형 안에서는 하늘과 산의 비율부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익숙한 3:2 직사각형 프레임처럼 좌우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는 화면 안에서 위와 아래가 서로 관계를 만든다. 그래서 산을 찍다가 구름을 오래 보게 되고, 구름을 찍으려다 그 아래 작은 밭을 발견한다.
숲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과 석탑.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는 위와 아래의 관계가 더욱 선명해진다.
대학 시절 스튜디오에서 보았던 사진가들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카메라의 파인더를 바라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웨이스트파인더라는 것이 내가 움직이는 것과 화면은 반대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구도를 잡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 hasselblad 503촬영 숲과 목조 계단, 석탑-숲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과 석탑.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는 위와 아래의 관계가 더욱 선명해진다.
ⓒ 이재필
완벽한 카메라에 남은 불완전한 여름
핫셀블라드는 정밀한 카메라로 기억된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에서 사용됐다는 역사도 그런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기계식 카메라를 실제로 사용하는 일은 그렇게 완벽하지만은 않다. 필름을 넣어야 하고, 다크슬라이드를 빼야 하고, 초。과 노출을 확인해야 한다. 필름 한 롤을 다 찍기 전까지 결과를 볼 수도 없다.
이번 촬영에서는 몇몇 사진에 붉은빛도 스며들었다. 다크슬라이드를 빼고 넣기를 반복하기에 그부분에서 빛이 새는 개체들이 있다. 간단하게 스펀지를 교체하면 될 일이지만, 선뜻 뜯어볼 생각은 나지 않는다. 처음 사진을 확인했을 때는 잠시 고민했다. 실패한 사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눈이 갔다.
▲ hasselblad 503촬영 꽃과 거대한 적운 - 길가의 꽃 너머로 여름 구름이 부풀어 올랐다. 가까운 꽃보다 멀리 있는 구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오후였다.
ⓒ 이재필
길가의 꽃 너머로 여름 구름이 부풀어 올랐다. 가까운 꽃보다 멀리 있는 구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오후였다. 필름 사진을 오래 찍으면서 완벽한 결과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빛이 새기도 하고 초。이 조금 어긋나기도 한다. 내가 기억했던 색과 전혀 다른 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흔적까지 포함해서 한 롤의 필름에는 그날의 시간이 남는다. 사진을 찍던 순간에는 몰랐던 것들이 현상된 필름에서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도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핫셀블라드는 여전히 불편하다. 한 롤에 열두 장뿐이고, 카메라를 들고 빠르게 움직이며 연속해서 사진을 찍기도 어렵다. 한 장을 찍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사진을 오래 찍을수록 이런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다.
필름을 넣는다.
파인더를 연다.
고개를 숙인다.
초.을 맞춘다.
숨을 고른다.
그리고 셔터를 누른다.
철컥.
사진 한 장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길어진 만큼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진다.
▲ hasselblad 503촬영 산과 구름, 밭의 풍경-해가 기울기 전, 여름은 산과 구름 사이에 잠시 멈춰 있었다.
ⓒ 이재필
해가 기울기 전, 여름은 산과 구름 사이에 잠시 멈춰 있었다. 대학 시절의 나는 고개를 숙여 핫셀블라드의 파인더를 바라보던 사진가를 멀리서 지켜봤다. 그 모습이 멋있어서 카메라를 갖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내가 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밝은 포커싱 스크린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린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풍경이 정사각형의 작은 창 안에서는 이상할 만큼 아름다워 보인다. 수많은 카메라를 사용해왔지만 핫셀블라드 앞에서는 아직도 가끔 멍하니 파인더를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오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갖고 싶었던 것은 핫셀블라드라는 카메라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천천히 걷고,
조금 오래 바라보고,
사진 한 장을 찍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
그날 나는 그 작은 사각형의 창을 들고 여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열두 장의 여름을 가지고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runch.co.kr/brunchbook/mycamera4th)에도 실립니다
Seastorygame
.
도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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