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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출입문 입구를 지키는 할머니
평상 사라진 도시, 말 걸기도 사라져
CCTV는 괜찮고 이웃의 눈길은 불편
왜 ‘저녁 드셨어요’를 묻지 못했을까
그늘이 깊어지고, 아직은 열기가 남아 있는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아파트 출입문에는 한 명 또는 두 명의 할머니가 의자를 가지고 나와 앉아 계신다. 낡은 의자와 부채 하나. 할머니의 나들이 채비는 그것이 전부다. 택배 차량이 오가고, 학원 가방을 메고 돌아오는 아이들,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서 오는 아이들, 바삐 퇴근하는 사람들. 등장 인물이 계속 바뀌는 그 광경을 할머니는 하염없이 바라보신다. 갓 구운 벽돌같이 붉었던 노을이 잿빛으로 변하고, 네모난 창에 하나둘 불이 켜질 때쯤에야 그 의자는 사라진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처럼 출입문을 지키고 계시는 그 할머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밖을 쳐다보는 할머니가 마음에 밟혔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면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호구조사에 착수하신다. 어디 갔다 와? 몇 호 살아? 집에는 누구누구 살아? 무슨 일을 해? 친정엄마는 어디 살아? 적지도 않은데다 답하기도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그러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몇 층에 산다고만 말하곤 잽싸게 도망간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질문을 하신다. 술래잡기하듯 할머니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나는 겸연쩍은 미소로 인사만 드린 채 출입문을 급히 통과한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반복하다 내가 끝내 호수를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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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편해졌다. 대신 나의 편안함은 할머니의 입을 닫게 했고, 얼굴마저 굳게 만들었다. 요즘은 눈이 마주쳐도 할머니는 먼저 말을 걸지 않으신다. 나의 인사에 고개만 끄덕이실 뿐이다. 그 많던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단지에는 벤치가 있는데도 할머니는 사람들이 오가는 출입문 한쪽에 의자를 가지고 나와 앉으신다. 벤치가 놓인 광장은 객석은 좋은데 무대가 비어 있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출입문으로 지나다니니까. 그 자리에서는 동네의 하루가 다 보인다. 아침에 나간 사람이 저녁에 돌아오고, 못 보던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한다. 가까이에 경로당도 있다. 그러나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방에는 노인들만 모여 있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것은 그 방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TV로는 안 된다. 화면 속 사람들과는 눈이 마주칠 수 없으니까. 출입구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어제도 지나갔고 내일도 지나갈 사람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할머니도 여전히 이 동네의 일원이다. 그러고 보면 그 하염없는 시선은 구경이 아니라 출석에 가깝다. 어쩌면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생각해 보면 옛집에는 그런 자리가 있었다. 대문 앞, 골목의 평상. 내 땅도 아니고 도로도 아니고 이웃의 땅도 아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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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누구나 머물 수 있던 그 어중간한 자리에서, 만나려고 한 게 아닌데 만나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저녁 바람을 쐬러 나온 노인들 곁에 장 보고 오던 이웃이 불려가 앉고, 수박 한 조각이 돌고, 지나가는 아이는 누구네 집 몇째인지 온 골목이 알았다.
오늘날의 아파트는 그 중간 지대를 지웠다. 건물 안은 완벽한 사적 공간으로, 건물 밖 광장은 공적 공간으로, 그 사이는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통과해야 하는 동선으로. 교류는 오픈 스페이스라는 지정석을 얻었지만, 약속하고 나가서 만나는 만남이 살다 보면 마주치는 만남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도시를 살 만하게 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교류인데, 의도 없이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구조가 된 것이다. 최근 어느 아파트는 승강기에 흠집을 내면 택배 기사에게 2100만원을 물리겠다고 공고했다. 그런 아파트의 출입문 앞에 접이식 의자 하나가 놓인 풍경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리스크로 읽히는 도시.
고백하자면 나도 그 시선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 내 집에 들어가는데 뭔가 검열을 받는 느낌도 들었고 걸리적거린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천장의 CCTV 아래로는 무심히 지나면서 사람의 눈길 하나는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는 어느새 시선을 감시 아니면 침범으로만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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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목적 없이 그저 바라보는 눈, 관심이라는 세 번째 범주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할머니의 질문들도 다시 읽힌다. 몇 호 살아? 어디 갔다 와? 그것은 참견이 아니라 사라진 중간 지대에서 쓰이던 언어, 그 세대의 말 걸기였을 것이다. 평상에서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물음들이다. 그 말을 알아들었으면서도 대답할 문법이 없었다. 문지방이 철거되면서 문지방의 언어도 함께 사라진 탓이다. 가족이 몇인지, 나이가 몇인지, 몇 호에 사는지를 말하지 않는 것은 험한 세상에서 정당한 방어다. 다만 할머니가 정말 원한 것이 내 호수였을까.
그 물음은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나, 여기 있어. 그렇다면 대답할 수 없어도 물어볼 수는 있다. 저녁 드셨어요? 오늘은 좀 덜 덥네요. 호수를 내놓지 않고도 건넬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있다. 묻는 일은 내 정보를 내어놓지 않으면서,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을 바라봐지는 사람으로 바꿔놓는다. 그 출입구에서 질문은 늘 한 방향이었다. 할머니만 묻고, 아무도 할머니에게 묻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도 어둠이 짙어지면 할머니는 의자를 접어 들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혼자 사시는 1층 그 집 현관문은 오늘도 반쯤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내일 늦은 오후 의자는 다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머지않아 바람이 차가워지면 의자를 마주하지 못할 계절이 올 것이다. 도시가 지운 자리에 사라진 문지방이 매일 복원되는 저녁. 나는 오늘도 그저 간단한 인사만 하고 지나왔다. “저녁 드셨어요?” 할머니는 의자를 들고나오는데, 나는 그 한마디를 아직도 들고만 다닌다.
살아? 무슨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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