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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19일 사랑하는 아버지 탁명환 소장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아들, 어머니의 남편, 세 아들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할아버지를 잃었다. 이로 인해 우리 가족은 이단 문제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피해자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이 ‘상처받은 치유자’로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가족이 모이면 아버지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신 어머니가 곁에 계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서로가 겪은 힘든 시간을 나눌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쉽지 않다. 대신 서로 말없이 배려하고 우애하며 화목한 일상을 사는 것으로 아버지를 추모할 뿐이다.
아버지는 85년 5월 3일 발생한 자동차 폭탄 테러로 중상을 입은 후 자신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적극적으로 장기기증운동에 참여하셨다. 괴한의 피습을 받고 돌아가신 후엔 장기와 시신 모두를 기증했다. 지금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엔 실제로 기증을 실천하는 분이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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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마친 후 아버지의 시신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기증됐다.
아버지 주검을 모시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을 때 당시 원목이던 김기복 목사님이 맞아주셨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할 때 조교를 맡은 은사셔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병원은 “의학 교육과 연구를 위해 연세대 의과대 해부학 교실에 시신을 기증하신 것은 훌륭한 의사를 길러내는데 밑거름이 되는 일이며 더 나아가 의학의 발전과 후대의 건강을 증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는 내용의 감사장을 전달했다.
아버지의 장기는 이식이 필요한 분들에게 기증됐다. 각막은 시력 회복이 필요한 환자에게 이식됐고 시신은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됐다. 아버지는 찬송가 가사처럼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세상에 돌려주고 눈물도 한숨도 없는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한동안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연세대 의과대를 찾았다. 의학 실습 후 선친의 유골은 인골 표본으로 해부학 연구실에 보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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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중이던 막내는 휴가 때면 간혹 세브란스병원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가족들도 이곳을 찾아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병원 신관이 건립된 후 아버지의 유골을 화장해 경기도 고양 청아공원에 모셨다.
이혜연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는 지난 6월 시신 기증의 역사를 기록한 책 ‘죽은 자가 어떻게 산 자의 스승이 되는가’에서 아버지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94년 2월 19일 새벽에 탁명환 소장께서 피습으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고인의 생전 유언에 따라 시신 기증을 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흥종교의 비리를 파헤치던 고인은 생전에 한 장기기증기관에 시신 기증 의사를 밝힌 유언장을 접수했다. 부검이 끝난 후 그 유언에 따라 연세대 의대로 기증 절차가 진행돼 연세대 의대 강당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해부학 교실로 모셔졌다. 당시 고인의 각막은 두 명의 환자에게 이식됐다.”
2002년 9월 20일에는 자식을 앞세우셨던 할아버지도 장기와 시신을 연세대 의대에 기증했다. 우리 모든 가족도 장기와 시신을 기증했다. 부활의 날에 이루어질 재회의 순간을 꿈꾸며 이제는 나보다 어린 아버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벌써 고민이다.
랑하는 아버지 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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